Tuesday, July 31, 2018

선교적 성도, 선교적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문제이다. 오직 나 혼자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내가 복음을 받아 들이는 순간 더 이상 나는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면 철저하게 이타적인 삶을 사셨다. 기회가 되는 대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을 내쫓으시고, 제자와 군중들을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심지어는 허기진 군중들을 먹이시기까지 하셨다.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나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이 되면서 자연히 이웃을 위한 삶이 된다. 만약에 나의 삶을 돌아볼 때 그렇지 못하다면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타적인 삶을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영혼의 문제와 육체적인 문제를 모두 포함한다. 예를 들어서 병자나 허기진 사람들에게 복음만을 전할 수는 없다. 우선적으로 그 병을 고쳐주고 허기진 배를 채워준 다음에 복음을 전하여 육과 영의 문제를 같이 해결해 주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사회복음을 외치고,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개인 구원만을 외치는 것은 예수님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어느 한쪽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양쪽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문제 - 예를 들어서 홈리스 문제 - 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직접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NGO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종교적인 색채를 제거함으로 해서 불신자들과 같이 합력할 수 있고 불신자들과 접촉하면서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 또 세상의 자원을 정부, 지자체, 기업등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회가 모든 재정적인 부담을 지지않아도 되고 더 큰 사역을 할 수 있다. 

복음의 가장 기본은 선교이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나서 목숨을 걸고 한 사역이 선교이다. 물론 모든 신자들이 바울과 같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바울의 삶을 닮아가야 한다. 요즘 신자들의 문제는 불신자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이 교회안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 물론 같은 신앙의 동료들을 만나서 교제하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그러나 삶의 100%를 교회 관련된 신자들과 보낸다면 선교의 기회가 전무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러라도 불신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한가지 방법이 NGO활동이다. NGO는 종교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사회적인 나눔을 위하여 만들어진 단체이다. 이러한 단체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 자연히 불신자들이나 다른 종교인들과 합력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기독교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불신자나 다른 종교인들에게 심어 줄 수 있고, 또 전도의 씨를 뿌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당장 "예수 믿으세요"라고 전도를 하는 것보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의 삶에서 긍정적인 면, 선한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이미 복음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이러한 관계 전도가 전도폭발이나 고구마전도와 같이 말로 하는 전도보다 장기적으로 보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이렇게 기독교 신자들이 교회 밖에서 선교적인 삶을 살게 되면, 교회도 선교적인 교회로 자연히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예배당과 같은 건물이 아니다. 또 담임목사나 목회진도 아니다. 교회는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신자들이다. 그러므로 선교적 교회를 만들려면 결국 모든 신자들이 선교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회가 모든 신자들에게 개교회에만 충성하라고 가르치고, 모든 신자들이 100% 교회안에서만 활동하게 되면 선교적인 삶을 살 기회가 그만큼 없어진다. 단기선교등 선교의 기회가 있지만 그것은 몇년에 한번, 일주일 정도밖에 안되는 매우 짧은 기간이다. 일년 365일 선교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결국 일상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묻어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자연히 삶에서 어떻게 성경대로 살아가야 하는 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교도소안에 있는 사람들중 기독교 신자의 퍼센트와 교도소밖의 신자의 퍼센트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교회를 오래 다니다 보면 교회안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의 모습이 직장안에서 직장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남성들이 그렇다. 교회를 오래 다니다 보면 교회에서 자신의 유익이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적응력이 점점 좋아진다. 교회 생활에 익숙해 지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정치(church politics)에도 익숙해 진다. 이러한 오래된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새신자들에게 큰 은혜가 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새신자들이 또 다른 교회로 이동하거나 교회에 다니지 않는 '가나안'('안나가'를 거꾸로 한 것) 신자가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오래된 신자들일수록 교회안과 교회밖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보여줄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그것만이 교회가 선교적 교회가 되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인수의 감소와 재정의 감소는 계속될 수 밖에 없고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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